知則爲眞愛 지즉위진애
愛則爲眞看 애즉위진간
看則畜之而非徒畜也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곧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곧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저암著庵 유한준兪漢雋 / 1732(영조 8)∼1811(순조 11) / 조선 후기의 문장가·서화가


조선 정조 때의 뛰어난 문장가 였다고 하고,이글은 이름 중간자만 다르신 "유홍준"님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고 인용해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 문장의 토대가 된 원문이다. 모은다는 말이 문장에 나오는 이유는 당시 수장가였던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이라는 사람의 화첩에 붙인 발문에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홍준님이 쓴 글은 얼핏 성경 구절 같은 느낌을 줘서, 저 문장 그대로 저암 유한준이 썼다고 알았을 때는 참 문장이 현대스럽다 싶었다.

화우畵友들이 많아서 제발문題跋文에서 저암의 글이 많이 발견된다고 하는 저암의 이 글은
사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일컫는 말은 아니고, 수장고에 쌓을 예술품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는 걸 알았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뭐 다 한가지이기는 하다. 무릇 어떤 대상이든지 알기전엔 그 진가를 모르는 것이니...

알고나서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되고, 그 때의 모으는 것은 그 이전의 멋모르고 모으던 때와는 사뭇 다르지 않겠는가?ㅎㅎㅎ

사람도 마찬가지 인 것같다. 겉으로 겉돌게 알 때와는 다르게, 알아가고 알아갈 수록 그 이전과 같지않고, 그 진가를 알게 되면 더 아끼게 되고, 그 특성을 알게 되면 참고하여 행동함으로서 부딪히는 것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게 되고, 상대를 존중하려 애쓰게 된다고 생각한다.

몇 일간 사실 좀 괴로웠다.
다른 사람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많이 아팠다.
내가 이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좌절했고, 많이 슬펐다.

한 멋진 마음벗이 해준 말 한마디 덕에 기운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람에 아니 묄세
꽃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기픈 물은 가말에 아니 마를쎄
내히 이뤄 바다에 이르노니

(해석)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맺히며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도 마르지 않고
시냇물을 이루어 결국은 바다에 까지 가느니라


나는 고등학교때 훈민정음을 원문 소책자로 배운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이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분이 언급할때 바로 아하~하고 떠올렸다. 그저 훈민정음을 짓고 그걸로 용비어천가를 지었는데, 그가운데의 가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글이 오늘 내게 삶의 깨우침을 줬다. 이래서 고전은 역시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라와 한글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닌 한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는 아주 짧지만, 긴여운과 임팩트를 간직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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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1445년(세종 27) 4월에 편찬되어 1447년(세종 29) 5월에 간행된, 조선왕조의 창업을 송영頌詠한 노래이다. 모두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로서, 한글로 엮은 책으로는 한국 최초의 것이다. 왕명에 따라 당시 새로이 제정된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권제權踶 등이 짓고,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 등이 주석註釋하였으며, 정인지가 서문序文을 쓰고 최항崔恒이 발문跋文을 썼다.] - 네이버 지식 백과 에서 발췌

아무것도 두 손에 가진 것 없을 때는 잃을 게 없어서 두려울 게 없었지만, 뭔가 아낄 대상이 생겼을 때 사람은 행복감과 동반해서 두려움과 슬픔의 감각도 함께 품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모든 걸 언제든 헌 신짝 버리듯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가를 다시 생각해봤다. 사랑은 나를 위해 하는 것이지만, 내 본위로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위해 사랑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다만 상대를 본위로 하는 나를 위한 사랑이라는 게 중요하다. 일반적으로는 나를 본위로하는 상대를 챙겨준다고 생각하는 사랑과는 개념이랑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 모든 걸 상대가 알 필요도 없고, 내 짐을 나눠져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긴 인생의 여정에서 같은 별에서 온듯한 공감대 형성이 기뻐서 그 잠깐 만나는 사이에 대화하고 대화가 통함으로서 오는 기쁨이 내가 바라는 전부이지,

내 어려움을 다 알려주고 기대기만 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은 그 시작부터가 이미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라고 왜 어려움이 없겠는가. 그치만 다 내보이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것이 절반이상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더 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내 어려움을 꺼내어 나열하면 나같아도 36계 줄행랑이 먼저일 거다. 기쁨은 나누고, 슬픔은 견딜수 있는 만큼은 스스로 감내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고 서로사랑한다해서 상대가 내 호구는 아닌거니까.

내 지금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위해서 발버둥 치지만 쉽지 않고, 하루하루 피말리는 상황이 돌아가지만, 또 현실이고, 이겨나가야 다음 발을 내딪을 수 있다. 그건 누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만든 상황이며, 그래서 탓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경제, 사회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투정부리고 남 탓하면 더 늑장부리게만 된다. 다 내가 포함되서 내 영향력이 절반이상은 발휘되서 빚어진 내가 만든 결과물이다. 똑바로 보기 싫어도 어쩔수 없다.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그 태양빛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아주아주아주 많이 남았다.
단, 사고사로 즉사할 경우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 긴 인생에서 마주치는 누구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내 삶의 스승들이다.
애인이라고 부모라고 더 소중하고, 폐지줍는 할아버지라고 동냥하는 사람이라고 하찮은게 아니란 거다. 내 지금삶이 어떠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폐지줍고 동냥하며 사는 말년이 나의 말년이 될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일단 노력해보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거다, 그래도 안된다면 그건 내 숙명으로 알고 또 순응하며 살아야 겠지, "順天者" 2년전 포항 여행에 가서 기와불사에 쓰고 온 글이다.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님을 다시 절감한다.

뿌리깊은 나무, 샘깊은 물을 닮아 가야 겠다.

2012. 12. 5. 수

海陳

Posted by sukero77 Trackback 0 Comment 0